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0.26 사건 (문단 편집) === 만찬 시작 === 저녁 6시 경 박정희와 차지철 일행이 궁정동 안전가옥에 도착했고 대기 중이던 김계원과 김재규가 그들을 맞이하여 안가의 나동 연회장으로 안내하면서 연회가 시작되었다. 당시 안가 요리사였던 이정오는 이날 식사로 [[비빔밥]], [[떡만둣국]], [[칼국수]]를, [[술안주]]로 잡곡무침, [[전복]]무침, [[송이버섯]] 구이, [[장어]]구이, [[갈비(고기)|불갈비]] 등을 준비했다. 그 밖에도 [[벌꿀|꿀]]에 재운 [[인삼]]과 [[도라지]]나물, 전, 생채, [[편육]] 등으로 한 상에 30접시 정도가 놓인 호화상이 차려졌다고 한다. 요리 재료는 당일 오후 5시경 중정 의전과장 차량 운전사 유성옥과 안가 경비원 방석상, 이광철이 [[동대문시장]] 등을 돌며 약 6만 원(2020년 기준 가치로 약 35만 원 가량) 어치를 샀다고 한다. 술은 [[막걸리]]와 [[위스키]] 등을 준비했는데 연회장에는 위스키만 들어갔고 평소 박정희가 즐겨 마시던 능곡 소재 양조장에서 공수해 온 막걸리는 안가 식당차 운전수인 김용남과 청와대 경호관 김용섭이 나눠 마셨다. 이때 유명해진 위스키로 당시 박정희가 마셨다던 '''[[시바스 리갈]]'''이 있는데 그 유명한 현장 검증 사진에도 이 술이 재현된 상 위에 올려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당시 현장을 검증했던 장경삼 당시 검찰관은 박정희는 [[대중 양주|국산 양주]][* 당시 리갈을 닮은 술병이라고 하면 진로위스키의 '길벗 로얄' 밖에 없다.]를 주전자에 담아 마셨는데 사건 현장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기자들이 병 모양의 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시바스 리갈로 착각해 그대로 보도해 잘못된 사실로 굳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계원이 재판 중 시바스 리갈을 마셨다고 진술했던 데다 사진 자료로도 시바스 리갈임이 확인되기 때문에 장경삼의 주장은 거짓이다. 또 다른 안가 요리사였던 김일선은 "(박정희는) [[콩나물밥]]을 좋아했고, [[참기름]]으로 볶은 대가리 뗀 [[멸치]]를 술안주로 즐겨먹었다"고 회상하였다.[* 출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5월 29일 (일) / 제 96회, 10.26 궁정동 사람들.] 당시 언론에서 말했던 사치스러웠던 연회장은 아직 개장을 하지 못했던 연회장으로, 실제 연회와 암살이 벌어진 나관의 시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만찬에서 술은 박정희와 김계원만 주로 마셨고 [[간경변]]을 앓고 있던 김재규는 박정희의 강권에 억지로 몇 잔을 마신 반면 독실한 [[크리스천]]인 차지철은 술잔에 입만 대는 시늉만 했다. 한창 연회가 진행되던 와중에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신민당(1967년)|신민당]] 공작은[* [[김영삼]]을 총재직에서 몰아내고 [[정운갑]]을 총재 대행으로 올리려 했던 중앙정보부의 공작.] 어떻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재규는 "[[민주공화당|공화당]]에서 신민당 의원들이 제출한 사표를 일괄 반려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당시 신민당은 [[김영삼]]의 국회 제명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민주통일당]]과 더불어 의원 전원(신민당 61명, 통일당 3명)이 국회에 의원직 사표를 낸 상태였고 중앙정보부에서는 신민당 당직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당직에서 사퇴하게 한 후 총재 직무가 정지된 김영삼의 당권을 빼앗아 [[정운갑]] 신민당 총재 권한대행에게 넘기려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 공작의 일환으로 신민당 의원들의 사표를 선별 수리하겠다는 설을 퍼뜨리며 으름장을 놓던 중에 공화당이 사표를 전부 반환하겠다고 선언해 버리면서 중앙정보부에 협조적이던 일부 신민당 의원들까지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면서 중앙정보부는 헛물만 켜야 했다. 그래서 중정 2차장보 김정섭은 공화당 의장서리 [[박준규(1925)|박준규]]에게 전화를 걸어 "기껏 공작해놨더니 공화당에서 인심 쓴답시고 일을 그르치깁니까? (김재규)부장님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알아서 하세요" 라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당직에서 사표를 내겠다던 (신민당) 의원들이 전부 강경하게 돌아서면서 다 틀렸습니다. 아무래도 신민당 주류들이 강하게 나와서 당분간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서 차지철은 "신민당 놈들 중에 국회의원 하기 싫은 놈 하나도 없어요. 까불면 학생이고 신민당이고 그까짓 놈들 전부 [[전차|탱크]]로 싹 깔아뭉개야 합니다."라는 살벌한 말을 뱉었고 박정희는 "오늘 삽교천은 공해도 없고 공기도 깨끗하던데, 신민당은 왜 그 모양인가?"라며 혀를 찼다. 이어서 김재규는 "신민당은 주류 중심으로 강경하게 전환되었고 [[정운갑]]은 비주류가 밀고 있는데 국민들이 신민당 비주류를 [[사쿠라(정치)|사쿠라]]로 보고 있어서 힘이 없습니다. 주류의 협조 없이는 정운갑 대행 체제 출범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차지철은 또 다시 "그깟 새끼들 싹 밀어버리겠다."라며 과격한 소리만 되풀이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혼잣말로 "요새 정보부는 [[부마민주항쟁|부마사태]] 처리도 그렇고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김재규의 화를 계속 부추겼다. 김계원은 이런 살벌한 상황을 풀어보려고 평소 [[칵테일]]을 잘 만들던 김재규에게 "김 부장이 칵테일을 잘 합니다. 어떻게 만드는 거요?" 라며 [[위스키]]로 [[칵테일]] 만드는 방법을 묻기도 하고[* 김계원의 질문에 김재규는 "술 한잔에 물 두잔을 섞으면 됩니다" 라며 퉁명스럽게 답했고 박정희에게 물을 섞지 않은 위스키 잔을 그대로 주기도 했다. 이미 김재규는 그때부터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 삽교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는 등의 말을 하며 화제를 전환하려 했지만, 차지철이 수시로 김재규에게 시비를 걸어대는 바람에 상황을 전환시키기에는 무소용이었다. 저녁 6시 30분쯤 차지철은 "깔아 뭉개버리겠다"는 말을 던져 놓고 옆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재순과 심수봉을 연회장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박정희 오른쪽에는 신재순이, 왼쪽에는 심수봉이 앉았고 심수봉은 그녀의 기타를 옆 문갑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취기가 오른 박정희는 김계원을 [[도승지]], 김재규를 [[포도대장]]이라 부르면서 술을 따라주었고 신재순과 심수봉에게 "김(재규) 부장은 술이 아주 세니까 많이 권해주게."라며 농담을 던지는 등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술잔이 돌고 잡담이 오가는 등 술자리 분위기는 익어갔지만 김재규는 차지철 때문에 이미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만찬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지난 후 7시 뉴스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김재규는 정승화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자 만찬장을 빠져나와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50m 가량 떨어진 본관(김재규의 집무실) 1층 식당을 방문하였다. 정승화는 오후 6시 35분 경 안가에 도착하여 본관 식당에서 김정섭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날 식사는 [[한국 요리|한식]]이었고 정승화는 여러 [[반찬]]과 함께 밥 한 공기와 [[된장국]] 두 그릇을 먹었다고 한다.] 김재규는 식사 중인 정승화에게 "갑자기 각하의 부름을 받고 연회에 참석 중이오. 김(정섭) 차장이 저보다 국내 정치는 훨씬 잘 알고 있으니 이 친구하고 시국 얘기 좀 나누고 계세요. 끝나는 대로 곧 오겠습니다. [[김영삼]]이도 내가 두 손 들게 만들어 놓았는데 공화당에서 제 말을 안듣고 멋대로 하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라고 억지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해명한 후 김재규는 자신의 집무실로 가서 책장에 숨겨놓은 발터 PPK를 바지 호주머니에 숨겨 나왔다. 그리고 김재규 자신과 인연이 오래된 심복들인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과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를 안가 마당으로 불러내 아래와 같이 명령을 내렸다. >김재규: (호주머니의 권총을 보이며)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일이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죽은 목숨이다. 오늘 저녁, 내가 (차지철을) 해치우겠다.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해라. 지금 본관에 [[정승화|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2차장보도 와 있다. 각오는 되어있지? >박선호: 부장님, [[박정희|각하]]도 포함됩니까? >김재규: 그래. >박선호: 오늘은 경호원이 '''7명'''[* 실제로 이날 경호원들은 경호실장 차지철을 필두로 정인형, 안재송, 박상범, 김용섭에 경호실 운전기사 김용태까지 포함해 총 6명으로서 7명에 거의 근접한 값이다. 다만 실질적으로 무장한 경호원은 차지철, 김용태를 제외한 4명이었다. 차지철은 이날 총을 안 갖고 있었다.]이나 와 있고 날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날을 고르시죠. >김재규: 안돼, 오늘 해치우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된다.[* 공교롭게도 똑같은 이유로 [[사육신#s-1.3|단종 복위 시도]]가 실패하고 관련자는 처형되었다. 김재규가 조상인 [[김문기(조선)|김문기]]를 무리하게 사육신에 넣으려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똑똑한 녀석 세 놈만 골라 나를 지원해라. 다 해치워 버려. 믿을 만한 놈 세 놈 있겠지. >박선호: 예,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장님, 30분만 여유를 주십시오. >김재규: 30분은 너무 길다. >박선호: 30분이 필요합니다. 30분 전에는 절대 행동하시면 안 됩니다. >김재규: 알았다. 그리고 김재규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중얼거리고 권총이 든 호주머니를 탁 치면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김재규의 일방적인 명령에 박선호와 박흥주는 처음에는 크게 놀랐지만 바로 마음을 다잡고 김재규의 명령에 성실히 따랐다. 박선호는 평소 자신이 아끼고 신임하던 같은 [[해병대]] [[하사]] 출신인 안가 경비조장 이기주[* 1973년 해병대 해체로 인하여 박선호와 마찬가지로 예비역 [[해군]] 하사 신분이었다.]와 의전과장 차량 운전사 유성옥 두 명까지 암살조에 합류시켰다.[* 유성옥은 육군 [[중사]] 출신으로 제대 후 중정 운전사로 취직했다가 박선호의 도움으로 1급 근무지인 안전가옥로 배치되었으며, 그 해 11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사 이후 박선호는 안가 경비원 김태원[* 그는 이날 비번으로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대행사 때문에 긴급 출근했다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을 차출하여 이기주와 함께 차지철과 청와대 경호원들의 확인 사살을 지시하였다. 현장에서 박흥주와 이기주, 유성옥은 안가 나동 식당 앞에 세워둔 의전과장 차량인 [[새한 제미니|제미니 승용차]] 내부에 숨어서[* 나동 식당 앞에 차량을 세워두자 나동 관리책임자인 남효주가 "여기 어떻게 들어왔느냐?" 라고 물었는데 유성옥이 "박선호 과장님이 차를 세우라고 했다"며 답했고 남효주는 아무 말 없이 물러섰다고 한다. 그만큼 박선호 의전과장이 안가에서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시사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박상범]] 등 청와대 경호원들은 안가 식당차량 운전사 김용남과 식당 밖에서 잡담을 나누던 중 의전과장 차량이 나동 식당 앞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고 한다.] 연회장에서 총소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한편 박선호는 안가 경호원 대기실에 있던 청와대 경호실 경호처장 정인형과 부처장 안재송을 처치할 준비를 했지만, 사실 박선호는 이 둘을 사살하기보다는 잘 설득하여 어떻게든 죽이지 않고 살려볼 속셈이었다. 정인형은 박선호의 '''해병대 장교 동기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안재송 또한 해병대 후배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안가 나동 주방에서는 정인형과 안재송 외에 청와대 경호실 소속 수행원으로 안가에 온 김용태 특수차량 운행계장[* 평소 청와대 관용차량은 박정희의 [[육군포병학교]] 교장 시절 [[운전병]]으로 복무한 인연으로 채용된 이타관이 몰았지만 대, 소행사 때는 비공식 행사용 차량인 [[토요타 크라운#s-2.5|크라운 슈퍼 살롱]]을 운행했기 때문에 이날은 김용태가 슈퍼 살롱 운전을 맡았다.], [[박상범]] 경호계장, 김용섭 경호관이 평소의 관례대로 박정희의 경호는 중정 경비원들에게 맡긴 채 안가 직원들과 같이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고[* 김용섭은 이날 능곡 양조장에서 사온 [[막걸리]] 말통을 [[포드 코티나#s-2.2.1|안가 식당 차량]] 보닛에 올려놓고 안가 식당 운전사 김용남과 같이 막걸리를 마셨다.] 정인형과 안재송은 경호원 대기실에서 별도로 저녁식사를 하던 중[* 안재송은 평소 매운 음식을 싫어해서 안가 주방장이 안재송에게 맵지 않은 국을 따로 끓여서 줬다고 한다.] 방에 들어온 박선호에게 정인형이 "밥 먹었어? 같이 먹자"고 권유하자 박선호는 "아까 먼저 먹었어"라며 사양하였다. 식사를 마친 정인형과 안재송은 [[땅콩]] 등 안주거리를 까먹으며 대기실의 컬러 TV로 [[AFN Korea|AFKN]] 방송[* 대한민국의 컬러 방송 송출은 1980년 12월에 시작되었고 이전까지 컬러 TV를 소유한 사람들은 [[주한미군]]을 위한 이 방송을 꽤 많이 시청했다.]을 시청하였다.[* 사건 발생 전인 7시 무렵은 코미디 및 시트콤 편성 시간이었다. 이날 경호원들이 보고 있던 프로그램은 '''Carol Burnett Show'''(당시 제목은 '''Carol Burnett and Friends''')였으며 김재규의 첫 저격이 이루어진 7시 40분에는 '''Welcome Back, Kotter'''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다만 미국 유학 경험이 있었던 안재송 정도를 제외하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채 그냥 '''컬러 TV 방송이 신기해서''' 방송을 틀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저녁 6~7시 사이에 편성된 공중파 방송은 동요 프로그램이나 '호돌이와 토순이' 등 어린이 프로그램 위주였으므로 딱히 볼 채널이 없었고 마침 대기실에 컬러 TV 수상기도 있고 하니 유일하게 나오던 컬러 방송이던 AFKN에 채널을 고정시켜 놨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컬러 방송을 일부러 막아 놓은 주체가 박정희였음을 생각해보면 묘한 아이러니이다.] * 당시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서 행사가 있으면 박정희의 경호는 중앙정보부 소속의 안전가옥 경비원들이 담당하고 청와대 경호실 소속 경호원들은 별도 장소에서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1995년 방영된 [[문화방송|MBC]] [[정치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 삽교천 행사 후 청와대 경호실 내부 회의 중 경호실 수행계장 [[박상범]]([[송금식]] 분)이 "청와대 경호원들의 영향이 안가에서는 무력화된다.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의를 올렸고 경호처 부처장 안재송([[신성호(성우)|신성호]] 분)도 맞장구를 쳤지만, 차지철([[이대근]] 분)은 "김재규 부장 정도야 내 파워로 꽉 누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라며 [[사망 플래그|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비록 김재규와 차지철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는 사이였다고는 해도 원래 그쪽 세계가 다 그렇듯 그 밑의 대통령 경호관들과 중앙정보부 직원들은 안가 행사 때마다 얼굴을 부딪히며 거의 다 친구들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당장 박선호와 정인형은 해병대 장교 동기로 친형제보다 더 친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또 박선호는 경호처 부처장 안재송과도 해병대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였다. 중정부장 비서 박흥주 육군 대령도 경호실 사람들과 친했다. 즉 10.26 사건은 친한 사람들끼리의 총질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경호실 내에서 경호원들이 사실상 무장 해제를 당하는 안전 가옥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고, 이런 안전가옥의 특성이 박정희의 죽음을 초래한 요인일 수도 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박정희는 자주 시계를 보았고, 그 모습을 본 차지철은 "각하, 시간이 되면 TV를 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박정희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차지철이 [[리모컨|자동 스위치]]로 TV를 켜서 [[KBS 뉴스]]를 시청했다. TV에서는 삽교천 제방 준공식 장면이 나온 후 [[김영삼]]과 [[주한미국대사|윌리엄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가 회담을 한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박정희는 심기가 상한 듯 "[[총재]]도 아닌 사람하고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라며 불쾌해했다. 뉴스를 보면서 박정희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차기 대선]]에 대한 언급을 하고, "헬기를 타고 오면서 보니까 한강에 다리가 많더라."라는 얘기도 꺼냈다. 이후 바지 주머니에 권총을 숨긴 김재규가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박정희는 TV를 끄라고 하여 차지철이 TV를 껐고,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거 깡패, 똘마니들만 찍은 사진 말고 제대로 된 부마사태 사진을 하나 만들어 보라"는 지시에 김재규는 짧게 "예." 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박정희는 김재규에게 김영삼 얘기를 꺼내면서 '''"([[미국 국방부]])브라운 장관이 오기 전에 김영삼이를 구속하라고 했는데 [[류혁인]]([[정무수석비서관|정무수석]])이 말려서 취소 시켰더니 안 되겠다.'''[* 류혁인은 10월 중순 경 '''해럴드 브라운''' 국방부 장관이 연례 한미 국방장관 회담 차 방문할 예정이므로 김영삼을 구속할 경우 한미 간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박정희를 설득하였고, 박정희는 류혁인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영삼의 구속기소는 보류된 상태였다.] '''국방장관 회의고 뭐고 우리 나라에서 우리 법대로 처리한다는데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미국에선 범법자들은 처벌 안하는가?"''' 라며 짜증을 감추지 않았고 김재규는 '''"각하, 김영삼은 비록 사법조치는 아니지만 국회에서 제명당한 것으로 국민들은 이미 처벌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속한다면 김영삼을 두 번 처벌한다는 인상을 줄 겁니다"''' 라고 답했지만 박정희는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당신네들은 신민당 놈들 비행조서만 움켜쥐고 있으면 그만인가? 잡아 들일 놈들은 딱딱 입건해야지..."''' 라며 김재규를 질책하였다. 이후 김재규는 계속 강경한 태도만 보이는 박정희와 더 이상 얘기를 하기 싫었는지 연회 내내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였고 박정희가 "노래나 한 곡 들어볼까" 라고 제의하여 심수봉이 기타를 연주하며 [[그때 그 사람]][* 이 때문에 이 노래는 후대에 10.26 사건을 상징하는 노래로 회자되고 있으며 훗날 10.26을 소재로 한 [[한석규]], [[백윤식]] 주연의 영화 제목([[그때 그 사람들]])으로도 쓰였다.]을 불렀고 앙코르를 요청하자 추가로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른 후 다음 노래 부를 사람으로 차지철을 지명했다.[* 심수봉은 김재규를 지명하려 했지만 기분이 아주 안좋아 보여서 차지철을 찍었다고 한다.] 차지철은 "[[도라지 타령]]"과 "나그네 설움"을 부르고 신재순을 지명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7시 35분이 되었다. 박선호는 안가 나동 지배인 남효주를 불러 "(김재규)부장님께 부속실로 전화가 왔다고 전해달라"며 지시했고 남효주는 연회장에 들어가 김재규에게 그대로 귀띔했다. 남효주의 전언을 들은 김재규는 부속실로 들어갔고 박선호는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대기하고 있었다. >김재규: 준비 되었는가? >박선호: 네, 완료했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